K-푸드의 세계적인 성장과 함께 해외 외식시장에 진출하는 국내 외식기업과 자영업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식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높아지고, 한국 드라마와 K-팝 등 한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해외 창업은 더 이상 일부 대기업만의 전략이 아닌 외식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성공 사례 이면에는 기대와 달리 현지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철수하는 브랜드도 적지 않다.
외식업 전문가들은 해외 창업 실패의 원인을 음식의 맛이나 브랜드 인지도에서 찾기보다 '메뉴에 대한 잘못된 접근 방식'에서 찾고 있다. 국내에서 성공한 메뉴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가면 경쟁력이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많은 창업자의 판단 기준이 되고 있지만, 글로벌 외식시장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최근 해외 외식업 컨설팅 현장에서는 "메뉴는 수출품이 아니라 현지 상품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말이 새로운 성공 공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외 시장은 한국에서 만든 메뉴를 단순히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현지 소비자가 기꺼이 구매하고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상품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시장이라는 의미다.
국내에서 인기를 얻은 메뉴가 해외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자연스럽다. 오랜 시간 검증된 레시피와 높은 고객 만족도, 안정적인 매출을 기록한 메뉴라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브랜드가 대표 메뉴를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하며 '한국의 맛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점을 가장 큰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해외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한국에서 유명한 메뉴'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방식과 소비문화에 맞는 음식이다. 국내에서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은 첫 방문을 유도하는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매출을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못한다.
외식업은 제조업과 다르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처럼 동일한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산업이 아니다. 음식은 문화와 생활, 기후와 식습관, 소비 방식이 모두 반영되는 대표적인 생활밀착형 상품이다. 따라서 같은 메뉴라도 국가가 달라지면 고객이 기대하는 맛과 양, 가격, 서비스 방식까지 모두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얼큰하고 강한 매운맛이 경쟁력이 될 수 있지만,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매운 음식에 익숙한 소비자가 많지만, 한국식 고추장의 단맛과 발효 향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북미 시장에서는 음식의 양과 토핑 선택의 다양성이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으며, 일본은 음식의 균형감과 섬세한 맛 표현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해외 소비자는 한국 소비자와 전혀 다른 기준으로 메뉴를 평가한다. 그런데도 많은 브랜드는 레시피를 바꾸면 정통성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국내 메뉴를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브랜드의 정체성과 메뉴의 구성은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브랜드의 철학은 유지하되, 상품은 현지 고객의 소비 기준에 맞게 재설계해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뉴 재설계는 단순히 맵기를 조절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현지 소비자의 식사 목적이다. 한국에서는 빠르게 한 끼를 해결하는 식사가 많지만, 일부 국가는 가족이나 친구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반대로 업무 중 짧은 점심시간에 식사를 해결하는 문화가 강한 시장도 있다. 식사 목적이 다르면 메뉴 구성과 제공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가격 전략 역시 메뉴 설계의 중요한 요소다. 많은 창업자가 국내 판매가격을 환율에 맞춰 단순 환산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결정하지만, 현지 소비자는 자신의 소득 수준과 경쟁 브랜드의 가격을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한다. 같은 금액이라도 국가별 구매력과 외식비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현지 소비자가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가격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식재료 구성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모든 식재료를 해외로 수입하면 원가 부담은 크게 증가하고 공급망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 반면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적극 활용하면 원가를 낮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더욱 친숙한 맛을 제공할 수 있다. 글로벌 외식기업들이 국가마다 일부 재료를 현지화하면서도 브랜드의 핵심 맛은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뉴 이름과 설명 방식도 해외에서는 다시 설계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익숙한 음식 이름이라도 해외 소비자에게는 발음하기 어렵고 음식의 특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메뉴명은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재료가 들어가고 어떤 맛을 느낄 수 있는지 쉽게 전달해야 주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메뉴 구성 방식도 국가별 소비 습관에 맞춰 조정할 필요가 있다. 가족 중심 문화에서는 세트 메뉴와 공유형 메뉴가 효과적일 수 있지만, 1인 소비가 많은 국가에서는 개인 메뉴와 간편식 중심의 구성이 더 높은 경쟁력을 갖는다. 최근 해외에서 성공한 한식 브랜드들은 한국의 메뉴판을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국가별 소비 패턴에 맞게 메뉴 수를 줄이거나 대표 상품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지화는 브랜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를 더 많은 소비자가 이해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실제 글로벌 외식기업들은 국가마다 메뉴를 다르게 운영하면서도 브랜드의 핵심 정체성은 유지하고 있다. 브랜드는 하나지만 상품은 국가마다 달라지는 전략이 글로벌 외식시장의 일반적인 운영 방식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창업을 준비하는 기업이라면 메뉴 개발보다 먼저 현지 소비자의 식생활과 소비 패턴을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지 소비자가 어떤 상황에서 외식을 하는지, 얼마를 지출하는지, 어떤 맛을 선호하는지, 경쟁 브랜드에서는 무엇을 가장 많이 주문하는지를 충분히 조사한 뒤 메뉴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파일럿 테스트와 시식 행사, 소비자 인터뷰 등을 통해 시장 반응을 검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메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해외 외식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한국에서 성공한 메뉴를 얼마나 그대로 가져가는가에 있지 않다. 현지 소비자가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상품으로 얼마나 새롭게 재탄생시키느냐가 성공의 핵심이 되고 있다. 메뉴는 단순히 해외로 보내는 수출품이 아니다.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고객을 위해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품이다.
K-푸드의 세계적인 인기는 해외 시장의 문을 열어주는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연결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앞으로 글로벌 외식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브랜드는 한국의 메뉴를 그대로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은 유지하면서도 현지 소비자의 생활과 문화에 맞는 새로운 상품을 설계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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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헌 기자 ( K창업연구소 소장 ) 다른글 보기 bizidea@hanmail.net# 태그 통합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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